대기업에 다닐때는 정말이지 회의 하다가 볼일을 다 볼 정도였다. 왠 회의가 그렇게 많은지.. 많은 경우에 그런 회의는 누군가 책임을 지기 싫거나, 아니면 조직 구조상 한사람이 책임을 질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그거 그때 우리가 모여서 정했던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justification을 위한 경우가 많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없이, 직원들끼리 서로 회의해서 최초의 아이폰을 만들수 있었을까?
커뮤니케이션은 또 어떤가? 나도 예전에는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읽었지만, 요새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하루에 두세번씩, 쌓여있는 이메일 중에서 내가 읽어야 할 이메일만 골라서 읽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을 정도로 이메일이 많이 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메일 클라이언트 툴 자체가 어찌보면 잘못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이메일마다 정확히 똑같은 크기의 픽셀 스페이스가 부여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 쓸데없는 스팸메일과 이사회에서 온 급한 이메일이 화면에서 똑같은 크기로 표시된다니!
슬랙이 이메일의 단점을 보완시켜 준다고 해서 나왔는데, 과연 슬랙은 우리를 생산성에서 해방시켜 주었는가? 아니면, 실시간성이 가미됨으로써 어찌보면 이메일보다 “더한 놈”이 되서 우리를 일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예전에는 이메일만 주로 봤다면, 이제는 이메일도, 카톡도, 슬랙도 봐야 하는게 아닌가? 우리도 모르게 이메일 보내놓고 카톡으로 “이메일 보냈다”고 말하는, 어찌보면 우스운 오버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진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회의와 이메일에 집착하는 것은 협업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쁨이 주는 안도감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종일 바삐 회의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다보면 뭔가 오늘 하루동안 많은 일을 이루었다는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조직의 의견을 조율해서, 조직이 한발짝 더 목표에 다가가게 했다면 그것은 생산적인 일이 맞다. 하지만 가끔은 이러한 회의와 커뮤니케이션이 “생산”과는 거리가 있을 때도 있다. 바쁨 자체가 주는 만족과 생산성을 혼동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busy-ness와 business를 혼동하는 것.
회의와 커뮤니케이션에는 “몰핀”과도 같은 요소가 어느정도 있어서, 그것이 떨어지면 허전해 지고 더욱 찾게 되는것도 사실이다. 근데 “진짜 몰핀”은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무언가에 몰두해서 뭔가를 만들어 낼때다. 우리는 Homo Makers, 즉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마인크래프트에서 건축물을 만들다가 중간에 잠드는 사람을 아직 본적이 없다. 가장 생산성이 높고, 가장 일에서 뿌듯함을 느낄 때는 뭔가에 몰두해서, 뭔가를 만들어 낼때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메이커 모드”로 일을 해야 한다. 방해받지 않고, 몰두해서, 자신만의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시간. 그런데 정말 창의적인 모드로 들어가기 위해선 (영어로 “getting in the zone”)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창의성 모드로 들어가더라도 누군가의 방해로 인해 인터럽션이 생기면 다시 그 모드로 들어가는 데는 동일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이런 메이커 모드는 조직 내에서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구글에서 내가 일했던 팀에서는 “No meeting Thursday”를 했었다. (물론 캘린더가 다 공유되어 있으므로, 누군가 No meeting Thursday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일정 잡아서 invite 하는것이 함정..) 그리고 우리 팀에서 시도해 보려고 하는 것이 “말 안하는 수요일”, 즉 “Quiet Wednesday” 이다.
이름을 무어라고 부르든 간에, 중요한 건 가끔은 조직 내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메이커 모드로 일할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협업은 중요하지만, 생산성에서 협업만이 중요한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